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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꿈 꾸어 보는 평화로운 세상

나바호 원주민의 땅 애리조나에는 모뉴멘트 밸리 등 일곱 곳의 경이롭고 기념비적인 곳이 있다. ‘캐년 드 세이’는 그 한가운데 있는 곳이다. 그랜드캐년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환상적인  협곡은 800피트 높이의 사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강줄기의 흔적을 따라 두 개로 나누어진다. 거의 5000여년 전부터 거주했던 아케익족 등 5개의 부족이 차례로 거주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캐년을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잘 만들어진 협곡위 길을 따라 연결된 전망대에서  협곡을 보는 것이다. 길은 사우스림과 노스림으로 나뉘어 있다. 사우스림에 있는 여섯개의 전망대 중 스파이더락(Spider Rock) 전망대에서 가까이 보이는 2개의 사암 기둥은 협곡 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원주민들이 정령이 살고 있다고 믿는 첨탑의 높이는 무려 800피트다.    그들이 살았던 흔적을 가까이서 보는 방법은 원주민 안내인의 지프나 트럭을 타고 캐년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절벽 중간에 지어진 집터, 바위에 새겨진 그림 등 여러 가지 흔적들을 볼 수 있다. 현재는 협곡에 두 가정만 살고 있다고 했다.   노스림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가슴 아픈 사연을 만나게 된다. 무에르또 협곡을 따라가는 노스림의 끝자락에  ‘학살 동굴 전망대’가 있다. 1805년 스페인 군대가 동굴로 피한 나바호 원주민 100명 이상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곳이다. 근처에 있는 ‘두 명이 떨어진 곳 (two fall off)’은 용감한 나바호 여인이 스페인 군인을 안고 투신한 곳이라고 한다.   1800년대 중반이 지나면서 미국은 스페인 군인을 몰아냈다. 하지만 애리조나에서 은광과 구리 광산이 개발되자 원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한 학살이 다시 자행되었다. 미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나바호족은 1863년, 9000여명이 뉴멕시코의 사막 지역으로 쫓겨가야 했다. 하지만 연방정부가 그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임을 인정해 1868년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도착한 사람은 겨우 4000여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 행군을 ‘더 롱 워크(The  Long Walk)’ 라고 부른다. 낯선 사막과 길에서 죽어가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살육과 추방은 미 대대륙 전역에서 자행됐다.     그들은 풀 한포기,돌 하나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며 사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원주민들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슬픔을 노래로 표현했다. 페루의 민요 ‘철새는 날아가고’도 그런 아픔이 짙게 묻어있는 노래다. ‘새가 되어 멀리 바다로 날아가겠어요, 머물다 떠나는 백조처럼. 땅에 매여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소리로 이야기하지요.’ 가족을, 이웃을 잃은 아픔을 그들은 가장 슬픈 선율로 표현했다.      지금도 국가, 민족, 종교 간의 갈등 때문에 지구촌 곳곳에서 살육이 자행되고 있다는 데 슬픔이 있다.  탐욕으로 인한 전쟁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일은 더는 없어야겠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이 아침에 나바호 원주민 원주민 안내인 스페인 군인

2023-01-30

감탄 자아내는 캐년엔 나바호족의 슬픈 역사

블루캐년 관광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는 친리(Chinle)였다. 나바호 네이션 자치지역 내에 있는 소도시로 나바호족 거주지다.     특이한 점은 인디안 자치지역에서는 아직도 마스크를 써야만 식당, 주유소 등 공공장소의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 서부 개척시대에 백인들이 전파한 전염병으로 인해 무수한 원주민들이 희생된 아픈 역사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친리 옆에 있는 캐년 드 첼리(Canyon de Chelley) 라는 관광지를 찾았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그랜드캐년처럼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정말 장관이다. 특히 캐년 안에 석주같이 올라온 스파이더 락(Spider Rock)은 감탄을 자아냈다.       나바호족 출신 가이드와 동행하면 캐년 내부를 자동차로 돌아볼 수 있다. 나바족이 살고 있는 곳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도 보였다.     투어 포인트인 터널 오버룩(Tunnel  overlook), 화이트 하우스루인(White HouseRuin),  슬라이딩 도어(Sliding Door)를 보고 마지막으로 스파이더 락을 둘러봤다. 스파이터 락은 트윈 타워(Twin Towers)로 우뚝 솟아있다. 가이드는 아이들이 울면 타워 꼭대기에 살고 있는 스파이더 우먼(Spider Women)이 잡아간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친다는 전설을 들려주기도 했다.       다시, 비지터 센터에서 좌측 다리를 지나 노스림(North Rim)을 따라가면서 만나게 되는 머미 케이브 오버룩(Mummy Cave Overlook)에는 나바호 부족의 한맺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골드러시 시기에 이곳에 은과 구리광산이 개발되면서 땅을 원하는 백인 정복자들과 나바호 원주민 사이에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백인 정복자들은 1846년 총과 대포로 무장한 멕시코 용병들까지 고용했고 양 측은 캐년 드 첼리(Canyon de Chelly) 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였다. 원주민들은 활과 창으로 대항했으나 결국 1848년 이곳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나바호 원주민의 눈물과 한이 서린 곳이다.   친리를 떠나서 나바호 원주민의 성지로 불리는 모뉴먼트 밸리로 향했다. 아리조나주와 유타주에 걸쳐있는 지역이고 옛날 서부영화에도 많이 나오는 명소이다. 존 포드 감독이 만들고 존 웨인이 등장하는 영화들도 이곳에서 많이 촬영했다.   모뉴먼트 밸리에 도착해서 그 동네에서 가장 좋다는 밸리뷰(Valley View)호텔에 투숙을 했다. 황량한 평야에 우뚝 솟은 모뉴먼트 바로 앞에 있는 호텔이라 기대가 컸다.     그런데 밸리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으로 인해 나가지도 못하고 방에만 갇혀있었다.  창문을 통해 본 모뉴먼트는 모래바람으로 인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보였다.     다음날 이번 여행에 많은 편의를 제공해 주신 백 목사님의 주선으로 나바호 원주민 가이드와 함께 오픈카를 타고 밸리 안으로 들어갔다. 가이드를 고용하면 원주민들의 집까지 돌아 볼 수가 있다. 모래바람이 많이 약해져서 그 나마 제대로 볼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백 목사님 덕분에 나바호족 원주민 가정을 방문 할 수가 있었다. 우리 일행을 위해 점심과 저녁을 준비 한다고 했다. 점심은 멕시칸 음식인 타코를 먹었고 저녁은 양을 한마리 잡는다고 한다. 백 목사님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세례식을 한 후 양고기 파티를 모든 식구들과 같이 한 것이다.   그런데 양고기 중에서 최고급으로 생각해 손님에게만 대접한다는 양 눈알을 먹으라고 해서 정말 난감했다. 어릴 때 동태 눈알을 먹은 기억은 있지만 영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대접을 외면할 수 없어 눈을 감고 억지로 먹었더니 의외로 쫄깃하고 맛도 있었다. 다음에는 뽈살이 맛있다고 해서 이것도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 골이 맛있다며 이것도 내놓았다.  그러나 비위가 약한 나는 이 것만은 도저히 먹지 못했다.   모뉴멘트 대 평원에 흩어져 양을 키우며 살고 있는 나바호족은 서부시대 개척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나바호’는 좋은 농부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들 부족의 원래 이름은  Dine(디네)라고 하는데 사람, 인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고 한다. 본인들과 아무 상관없는 의미를 초기 개척자들이 그렇게 부르고 사용한 것이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가던 중 미 동부에 잘못 도착했고 원주민을 처음 발견한 선원이 인도인으로 착각  ‘인디오’라고 소리친 것이 오늘날 인디언(Indian)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나바호족 감탄 나바호족 출신 나바호 원주민 나바호 네이션

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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